서울대학교 미술관
Museum of Art
Seoul National University
서울대학교 미술관은 2006년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대학 미술관으로, 교문 옆에 자리 잡아 대학과 지역사회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미술관은 국내외의 근현대미술을 비롯하여 건축, 도서자료 등 다양한 매체를 전시하고, 음악, 문학, 영화를 아울러 펼쳐내는 복합문화공간입니다. 또한 대학 내의 구성원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미술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풍부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미술관
Museum of Art
Seoul National University
서울대학교 미술관은 2006년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대학 미술관으로, 교문 옆에 자리 잡아 대학과 지역사회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미술관은 국내외의 근현대미술을 비롯하여 건축, 도서자료 등 다양한 매체를 전시하고, 음악, 문학, 영화를 아울러 펼쳐내는 복합문화공간입니다. 또한 대학 내의 구성원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미술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풍부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미술관
Museum of Art
Seoul National University
서울대학교 미술관은 2006년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대학 미술관으로, 교문 옆에 자리 잡아 대학과 지역사회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미술관은 국내외의 근현대미술을 비롯하여 건축, 도서자료 등 다양한 매체를 전시하고, 음악, 문학, 영화를 아울러 펼쳐내는 복합문화공간입니다. 또한 대학 내의 구성원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미술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풍부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미술관
Museum of Art
Seoul National University
관람안내
시간: 10:00-18:00 (입장마감 17:30)
입장료: 일반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2,000원(보호자 동반시 1인 무료), 단체(20인 이상) 2,000원(인솔자 1인 무료)

*월요일, 국정공휴일, 개교기념일(10/15), 전시준비기간 휴관

부대시설
렉처홀, 오디토리엄, 카페

안내
T: 02-880-9504
W: http://www.snumoa.org

미술관 소개
서울대학교 미술관은 2006년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대학 미술관으로, 교문 옆에 자리 잡아 대학과 지역사회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미술관은 국내외의 근현대미술을 비롯하여 건축, 도서자료 등 다양한 매체를 전시하고, 음악, 문학, 영화를 아울러 펼쳐내는 복합문화공간입니다. 또한 대학 내의 구성원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미술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풍부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소장품 소개
장욱진 - 쌍수(雙樹), 쌍희(雙喜)
한지에 수묵, 68.3 x 35.2 cm, 1982
장욱진(1917–1990)은 어린아이의 그림같이 순진무구하고 단순한 형태를 특징으로 하는 독특한 화풍을 형성한 작가이다. 1982년 제작된 〈쌍수(雙樹), 쌍희(雙喜)〉는 전통적 재료인 한지와 수묵을 통해 두 그루의 나무와 두 마리의 새,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동네 아이들과 강아지를 표현하고 있다. ‘쌍희’는 기쁜 일이 겹치거나 잇달아 일어난다는 뜻으로, 중국 북송 때의 시인이자 정치가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의 고사(故事)에서 유래한 말이다.  또한 이 말은 부부의 금실을 기리는 데 사용되기도 하는데, 혼례 등 경사가 있는 날에 ‘쌍희’의 희(囍)자를 써서 대문 앞에 붙이는 풍습도 이와 관련이 있다. 장욱진은 이러한 소재를 수묵이라는 전통적인 재료로 표현하면서, 어린아이와 강아지를 함께 묘사하며 그만의 동심 가득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날아가는 새와 바람에 흔들리는 듯 기울어진 나무를 묘사한 거친 붓터치는 화면에 생동감을 더한다.
김창열 - 회귀 1993
캔버스에 유채, 248 x 333 cm, 1993
김창열(1929–)은 극사실적으로 표현한 물방울 그림으로 유명하다. 초기에는 〈제사〉(1964)와 같은 앵포르멜 경향의 작품에서 원시적 소재를 통해 전후의 시대적 감성을 표현했으나, 1960년대 중반 파리에 정착하며 보다 맑은 느낌의 물방울 작업을 시작했다. 작가가 화면에 문자를 등장시킨 것은 『르 피가로』의 지면 위에 물방울을 그려 넣었던 1975년부터였다. 이후 직접 문자를 그려나가는 방식으로 발전되었다. 김창열의 작업에서 문자는 동양적 감성을 담아내는 동시에, 동양인으로서의 작가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는 천자문과 물방울이 결합된 연작을 시도했으며, 1993년 제작된 〈회귀 1993〉은 그 연작 중 일부이다. 〈회귀 1993〉에서는 천자문이 대형 화폭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미묘한 색상의 변화가 화면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문자 위에는 사실적으로 묘사된 크고 작은 물방울들이 불규칙하게 자리하고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물방울들은 흰색과 노랑색, 주황색, 회색, 검은색의 물감 덩어리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금방이라도 흐를 듯한 생생한 환영을 관람자에게 전해준다.
서세옥 - 춤추는 사람들
닥종이에 수묵, 167.5 x 139 cm, 1996
산정(山丁) 서세옥(1929–)은 국내에서 교육을 받고 한국 근대 화단을 이끈, 해방 이후 첫세대 작가이다. 〈춤추는 사람들〉은 1970년대 중반부터 진행된 ‘사람’ 연작 중 하나이다. 몇 개의 선만으로 구성된 사람의 모습은 그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동작과 표정을 표현해낸다. 이러한 ‘사람’들은 기호학, 혹은 서체적 표현의 연장으로 해석되는데, 1996년에 제작된 〈춤추는 사람들〉은 붓의 속도감과 강약의 표현만으로 인간의 형상을 드러낼 뿐 머리와 팔 다리의 구별이 모호하다. 이러한 구성은 화면 속 공간을 효과적으로 분할하며 리듬감을 부여한다. 나아가 격자무늬에 가깝게 서로 맞대고 있는 인간의 형상은 인간과 인간과의 긴밀한 관계를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김병기 - 신라토기의 시간과 공간
캔버스에 유채, 122 x 152 cm, 1993
김병기(1916–)는 해방 전 추상미술의 1세대 작가이자 이론가, 비평가, 교육가이다. 1965년 《상파울루비엔날레》 한국대표 커미셔너 및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후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1960년대 중반에는 주로 앵포르멜 형식에서 발견되는 서예적 조형미와 초현실주의에 관심을 가졌으나, 1970년대 초에 이르러서는 정물과 풍경 등 구체적인 형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화면을 구성하는데 있어 선(線)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였으며, 선의 사용을 통한 화면 분할은 작품의 특징적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1993년 제작된 〈신라 토기의 시간과 공간〉 역시 수직과 수평의 선이 가볍게 중첩되어 있으며, 이러한 선의 집합을 통해 화면이 분할되어 있다. 작품 상단부를 가로지르는 가는 선의 집합은 신라 토기라는 전통적인 모티프를 연상시킨다. 여기에 정연하게 배열된 원색 사각형들이 더해져 기하학적인 심상과 선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
정상화 - 무제 82–7
캔버스에 아크릴릭, 129.8 x 130 cm, 1982
정상화(1932–)는 1970년대 한국 미술계에 대두한 단색조 경향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작가는 캔버스에 징크물감으로 초벌을 칠한 다음, 그것이 완전히 마를 때까지 캔버스를 규칙적인 간격으로 접어 표면에 격자형태의 균열이 생기도록 한다. 그 후 화면의 균열에 의하여 생성된 무수한 네모꼴의 형태로부터 징크물감을 떼어내고, 그 자리를 아크릴 물감으로 여러 겹 메운다. 행위를 수없이 반복하고 그 행위 자체가 작품을 규정짓는다는 점에서 《무제》의 제작과정은 그 자체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반복된 행위의 흔적은 1982년 제작된 〈무제 82–7〉의 화면에서도 드러난다. 이 작품을 멀리서 볼 때는 은은한 백색을 띈 사각형의 캔버스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발견되는 수많은 작은 사각형을 통해 입체감과 질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네모난 균열들은 전통 창의 격자무늬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캔버스의 평면에 질감과 리듬감을 더한다. 이러한 결과를 얻기 위해 노동집약적으로 행해진 뜯어내기와 메우기는 동양적 정신성, 즉 자기 수행과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잔잔하면서도 규칙적인, 그러나 기계적이기보다는 유기적인 반복을 보여주는 그의 화면은 자연스러운 질서를 통한 안정감을 표출한다. 
윤형근 - 태운 암갈색–군청색의 블루
린넨에 유채, 91 x 116 cm, 1997
윤형근(1928–2007)은 1970년대 한국 화단의 주요 경향이었던 단색조의 평면회화 작업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태운 암갈색–군청색의 블루〉는 1990년대 《Umber–Blue》 연작으로부터 확장된 작업이다. 작가는 황갈색과 감청색이 겹쳐지면서 이루는 검은 빛을 “자연이 결국 돌아가는 색깔”이라 표현한 바 있다.  이는 그의 작업이 불교의 선과 노장사상의 무위자연에 내포된 환원, 근원의 개념뿐 아니라 본질적인 한국의 미학을 표현하려 했음을 의미한다 . 제목은 안료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이에 대해 작가는 “회화를 굳이 언어로 번역할 필요를 못 느껴 그냥 색깔 이름을 작품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안료를 천연 마포에 스며들게하여 마포의 색과 질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기법은 여전히 사용되었으나, 번짐 효과는 상당히 절제되어 미세한 흔적만 남았다. 한편 검은색에 가깝게 짙어진 청색은 공간을 더욱 엄격하게 분할한다.
윤효중 - 사과를 든 모녀상
나무, 170 x 102 x 66.5 cm, 1940년대
윤효중(1917–1967)은 한국 현대 조각의 1세대 작가로 목조를 중심으로 향토적인 소재를 주로 다루었다. 〈사과를 든 모녀상〉은 1940년대 제작된 것으로 사과를 든 어머니와 딸의 모습을 목조로 표현한 것이다. 두 모녀가 입은 한복과 쪽진 단정한 머리 모양은 한국 고유의 여인상을 연상시키지만, 인체 비례는 서구적인 느낌을 준다. 두 인물의 외형과 이목구비는 비교적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으나 왼편에 서있는 소녀는 다리와 팔을 약간 벌린 자세를, 어머니는 무릎을 약간 굽힌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긴장감과 동세를 느낄 수 있다. 재료의 표현에 있어 매끈한 선과 부드러운 질감은 목재를 다루는 작가의 기량을 잘 보여준다.
장발 - 작품 1
목탄지에 수묵채색, 100.5 x 130.7 cm, 1975
우석(雨石) 장발(1901–2001)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의 초대학장이자, 한국 성화(聖畵)의 개척자로 잘 알려져 있다. 장발 작업의 주를 이루는 것은 성화이지만, 1970년대에는 단기적으로 추상표현주의적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작품 1〉에는 뿌리기, 번지기, 흘리기 등의 기법을 이용한 바탕과 이 위에 힘 있게 그려진 굵직하고 무게감 있는 검은색의 서체적 필선이 나타나 있다. 작가는 여기서 서예의 필선과 추상표현주의의 우연적이고 제스처적인 요소를 조화시키는 실험을 시도하였다. 이는 당시 서구 화가들 사이에 확산되었던 일본의 선(禪) 사상 및 서예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한편, 동시에 당시 개인사로 고통받았던 작가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장우성 - 청년도
한지에 수묵담채, 213.3 x 160.3 cm, 1956
월전(月田) 장우성(1912–2005)은 해방 후 한국 전통 화단의 변화를 이끈 대표적인 작가로, 1931년부터 이당 김은호(1892–1979)의 화숙인 낙청헌(絡靑軒)에서 그림을 배웠다. 1956년 서울대학교 개교 1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한 〈청년도〉는 전통 문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던 작가의 의도를 그 소재와 표현기법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청년들의 일상을 소재로 삼아 교정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깔끔한 복장의 일곱 명 대학생을 화면의 전경에 그려냈다. 특히 옷과 책의 색채 대비를 통해 책을 들고 있는 여성을 더욱 부각시켰는데, 이는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교육을 받게 된 여성의 변화된 사회적 위치를 드러낸다.  또한 일본채색화의 특징인 불투명한 채색 대신 담채를 사용하고 간결한 선묘를 통해 작품의 인물들을 표현했는데, 이러한 기법의 변화는 식민지 잔재 극복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대해 미술 영역에서의 해결책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만린 - 작품 O. 91–10–1
청동, 204 x 250.2 x 191 cm, 1991

최만린(1935–)은 해방 후 국내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활동해 온 제1세대 작가로, 서구의 현대적 조형언어를 수용하면서 동시에 한국 조각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추상 조각 작업을 지속해왔다. 《O》 연작은 생명의 근원에 대한 작가의 탐구가 가장 환원적인 형식으로 나타난 작업이다.불필요한 것은 제거하고 점과 선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만을 남긴 형태에는 조각의 본질에 대한 작가의 동경이 응집되어 나타난다. 제목 《O》에 내포된 ‘무(無)’ 혹은 ‘제로(zero)’ 역시 아무것도 없는 진공상태가 아니라 가장 순수한 상태를 의미하며, 동시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원과 수직선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작품 O. 91–10–1〉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생명의 에너지를 형상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