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미술관
Sangwon museum of art

상원미술관은 공예 ‧ 디자인 전문 아트 뮤지엄으로 출발하여 2003년 개관 이래로 공예와 디자인 분야의 진흥과 발전을 도모하고 있으며, 특히 사라져 가는 민속공예의 발전적 계승 모델의 구축을 위한 전방위적인 노력을 경주해 왔다. 2013년부터는 이전의 관심과 더불어 ‘대중과 함께 하는 미술문화의 활성화’ 및 ‘시각예술의 발전을 위한 창작 토대 강화’라는 미술관 운영의 방향성을 새롭게 제시하고, 이와 관련하여 미술에 철학, 과학 등을 접목하는 융복합 시도들을 다양하게 전개해 오고 있다.

상원미술관
Sangwon museum of art

상원미술관은 공예 ‧ 디자인 전문 아트 뮤지엄으로 출발하여 2003년 개관 이래로 공예와 디자인 분야의 진흥과 발전을 도모하고 있으며, 특히 사라져 가는 민속공예의 발전적 계승 모델의 구축을 위한 전방위적인 노력을 경주해 왔다. 2013년부터는 이전의 관심과 더불어 ‘대중과 함께 하는 미술문화의 활성화’ 및 ‘시각예술의 발전을 위한 창작 토대 강화’라는 미술관 운영의 방향성을 새롭게 제시하고, 이와 관련하여 미술에 철학, 과학 등을 접목하는 융복합 시도들을 다양하게 전개해 오고 있다.

상원미술관
Sangwon museum of art
관람안내
관람 시간: 10:30 - 17:30
휴관일: 월요일, 일요일, 법정공휴일 외
입장료: 전시 규모와 성격에 따라 변동, 별도 공지
기본요금은 일반(19-64세) 2,000원 / 청소년·어린이(3-18세) 1,000원 
단체(20명 이상)은 10% 할인
65세 이상, 3세 미만, 장애인, 국가 유공자 등 입장료 면제

부대시설
교육실, 야외 휴게실

안내
T: 02-396-3185 (내선 201)
F: 02-396-3186
W: http://www.imageroot.co.kr

상원미술관은 공예 ‧ 디자인 전문 아트 뮤지엄으로 출발하여 2003년 개관 이래로 공예와 디자인 분야의 진흥과 발전을 도모하고 있으며, 특히 사라져 가는 민속공예의 발전적 계승 모델의 구축을 위한 전방위적인 노력을 경주해 왔다. 2013년부터는 이전의 관심과 더불어 ‘대중과 함께 하는 미술문화의 활성화’ 및 ‘시각예술의 발전을 위한 창작 토대 강화’라는 미술관 운영의 방향성을 새롭게 제시하고, 이와 관련하여 미술에 철학, 과학 등을 접목하는 융복합 시도들을 다양하게 전개해 오고 있다.



소장품 소개
최성진 - 선운사 설경
회화(유화), 710x600mm, 1981년도
최성진(1923)은 충남 논산 출신으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였고, 한양대학교에서 미술교육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57년부터 1990년까지 다수의 개인전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1979년 일본 신기류회의 한일 교류 전, 1986년 일본과 미국에서 한국 현대미술 작가 선발 출품 전 등에 참여하였다. 1984년에서 1985년까지 현대미술단체 신기회장과 1986년~1988년 한국미술협회 이사 및 서양화 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박석환 - 등대 보이는 해변
회화(유화), 595x490mm, 1985년도

박석환(1929)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동덕여자대학교 회화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그는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 5회 및 특선 4회, 1973년 국전 추천작가상과 2004년 3.1문화상 예술상을 수상하였으며, 1974년, 1989년, 1996년 등 개인전, 그리고 한국 현역 화가 100인 전, 한국의 자연 전, 한국 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 전, 1987년, 1990년, 1992년 국립 현대 미술관의 현대미술 초대 전, 예술의 전당 음악과 무용의 미술 전, 한국 현대 구상회화의 흐름 전, 세종문화회관 2009 한국 미술 대표작가 100인의 오늘 전 등 유수의 단체 전시에 참여하였다. 

화가 박석환은 자기 자신의 작위적인 관념이나 사물, 이른바 공상적인 어떤 대상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대상을 솔직하게 따라가는 사실주의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는 무엇보다도 색채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말하자면 그는 색채가 사물을 존재케 하는 이유가 되고 있음을 오랜 동안 묵묵히 터득해 가고 있는 듯 보인다.

남상교 - 심심(深深)
섬유공예, 585x660mm, 1975년도

남상교(192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서 응용미술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서울여자대학교 공예과 교수 및 학생처장, 한양대학교 공예과 교수와 디자인대학 학장, (사)한국디자이너협의회 이사장, 국제 기능올림픽 대회 한국위원회 기술위원 및 민속공예 분과장, 한국 디자인학회 이사 및 섬유디자인연구회 회장, 경기도 공예품개발업체 전문지도위원과 경진대회 심사위원 및 위원장, 전국 공예품 경진 대회(현 공예대전) 추진 및 심사 위원, 한국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전 협회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장 역임 등 다수의 교직 및 사회 활동을 하였다. 정년퇴임 후에는 서울 평창동에 상원미술관(2003년)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작가 남상교는 3회의 개인전과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한국 공예 대전, 한국 현대공예 우수작가 초대 전, 현대 미술 초대작가 전, 예술의 전당 미술관 개관 전, 서울 공예 대전, 한국 섬유 공예 100인 전 등 100회 이상의 정평 있는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그는 양질의 재료가 우수 공예를 낳고, 재료의 개선이 새로운 공예를 낳는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섬유는 섬유답게”라고 확신하고 있는 그의 염색공예는 자연에서 얻어진 영상들을 미적인 형태로 바꾸어 놓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형태와 표현 조직을 균형 있게 조화시키면서 3차원의 구조와 질감을 동시에 표현해 내고 있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자연의 인상과 생활의 체험에서 영감을 얻어 내며 온화한 재질감, 섬세한 조직, 세련미 등 기품이 있는 하나의 생명체로 접근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한국적인 이미지에 매우 근접해 있다고 평할 수 있다.

남상교 - 심안(心眼)
왕골공예, 780x370mm, 1990년도

남상교(192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서 응용미술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서울여자대학교 공예과 교수 및 학생처장, 한양대학교 공예과 교수와 디자인대학 학장, (사)한국디자이너협의회 이사장, 국제 기능올림픽 대회 한국위원회 기술위원 및 민속공예 분과장, 한국 디자인학회 이사 및 섬유디자인연구회 회장, 경기도 공예품개발업체 전문지도위원과 경진대회 심사위원 및 위원장, 전국 공예품 경진 대회(현 공예대전) 추진 및 심사 위원, 한국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전 협회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장 역임 등 다수의 교직 및 사회 활동을 하였다. 정년퇴임 후에는 서울 평창동에 상원미술관(2003년)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작가 남상교는 3회의 개인전과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한국 공예 대전, 한국 현대공예 우수작가 초대 전, 현대 미술 초대작가 전, 예술의 전당 미술관 개관 전, 서울 공예 대전, 한국 섬유 공예 100인 전 등 100회 이상의 정평 있는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그는 ‘한국 민속공예의 조형사적 연구’(박사학위 논문) 등 25편의 논문 및 저서를 집필하였으며, 오랫동안 다양한 연구 실험을 통해 이룩한 염색공예(주전공)의 성과들을 민속공예에 적용․접목하여 공예의 확장성을 도모하여 왔다. 90세에 이르는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박공예, 왕골공예 등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의 민속 공예의 발전적 계승 모델의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상교 - 정의(靜誼)
섬유공예, 510x780mm, 1973년도

남상교(192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서 응용미술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서울여자대학교 공예과 교수 및 학생처장, 한양대학교 공예과 교수와 디자인대학 학장, (사)한국디자이너협의회 이사장, 국제 기능올림픽 대회 한국위원회 기술위원 및 민속공예 분과장, 한국 디자인학회 이사 및 섬유디자인연구회 회장, 경기도 공예품개발업체 전문지도위원과 경진대회 심사위원 및 위원장, 전국 공예품 경진 대회(현 공예대전) 추진 및 심사 위원, 한국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전 협회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장 역임 등 다수의 교직 및 사회 활동을 하였다. 정년퇴임 후에는 서울 평창동에 상원미술관(2003년)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작가 남상교는 3회의 개인전과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한국 공예 대전, 한국 현대공예 우수작가 초대 전, 현대 미술 초대작가 전, 예술의 전당 미술관 개관 전, 서울 공예 대전, 한국 섬유 공예 100인 전 등 100회 이상의 정평 있는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그는 양질의 재료가 우수 공예를 낳고, 재료의 개선이 새로운 공예를 낳는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섬유는 섬유답게”라고 확신하고 있는 그의 염색공예는 자연에서 얻어진 영상들을 미적인 형태로 바꾸어 놓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형태와 표현 조직을 균형 있게 조화시키면서 3차원의 구조와 질감을 동시에 표현해 내고 있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자연의 인상과 생활의 체험에서 영감을 얻어 내며 온화한 재질감, 섬세한 조직, 세련미 등 기품이 있는 하나의 생명체로 접근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한국적인 이미지에 매우 근접해 있다고 평할 수 있다
남상교 - 자애Ⅱ
박공예, 150x150x195mm, 2006년도

남상교(192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서 응용미술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서울여자대학교 공예과 교수 및 학생처장, 한양대학교 공예과 교수와 디자인대학 학장, (사)한국디자이너협의회 이사장, 국제 기능올림픽 대회 한국위원회 기술위원 및 민속공예 분과장, 한국 디자인학회 이사 및 섬유디자인연구회 회장, 경기도 공예품개발업체 전문지도위원과 경진대회 심사위원 및 위원장, 전국 공예품 경진 대회(현 공예대전) 추진 및 심사 위원, 한국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전 협회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장 역임 등 다수의 교직 및 사회 활동을 하였다. 정년퇴임 후에는 서울 평창동에 상원미술관(2003년)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작가 남상교는 3회의 개인전과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한국 공예 대전, 한국 현대공예 우수작가 초대 전, 현대 미술 초대작가 전, 예술의 전당 미술관 개관 전, 서울 공예 대전, 한국 섬유 공예 100인 전 등 100회 이상의 정평 있는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그는 ‘한국 민속공예의 조형사적 연구’(박사학위 논문) 등 25편의 논문 및 저서를 집필하였으며, 오랫동안 다양한 연구 실험을 통해 이룩한 염색공예(주전공)의 성과들을 민속공예에 적용․접목하여 공예의 확장성을 도모하여 왔다. 90세에 이르는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박공예, 왕골공예 등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의 민속 공예의 발전적 계승 모델의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상교 - 장생집(長生什) Set
한지공예, 290x290x145, 250x250x120, 220x220x100, 170x170x70, 140x140x70 (mm), 1978년도

남상교(192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서 응용미술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서울여자대학교 공예과 교수 및 학생처장, 한양대학교 공예과 교수와 디자인대학 학장, (사)한국디자이너협의회 이사장, 국제 기능올림픽 대회 한국위원회 기술위원 및 민속공예 분과장, 한국 디자인학회 이사 및 섬유디자인연구회 회장, 경기도 공예품개발업체 전문지도위원과 경진대회 심사위원 및 위원장, 전국 공예품 경진 대회(현 공예대전) 추진 및 심사 위원, 한국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전 협회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장 역임 등 다수의 교직 및 사회 활동을 하였다. 정년퇴임 후에는 서울 평창동에 상원미술관(2003년)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작가 남상교는 3회의 개인전과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한국 공예 대전, 한국 현대공예 우수작가 초대 전, 현대 미술 초대작가 전, 예술의 전당 미술관 개관 전, 서울 공예 대전, 한국 섬유 공예 100인 전 등 100회 이상의 정평 있는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그는 ‘한국 민속공예의 조형사적 연구’(박사학위 논문) 등 25편의 논문 및 저서를 집필하였으며, 오랫동안 다양한 연구 실험을 통해 이룩한 염색공예(주전공)의 성과들을 민속공예에 적용․접목하여 공예의 확장성을 도모하여 왔다. 90세에 이르는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박공예, 왕골공예 등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의 민속 공예의 발전적 계승 모델의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상교 - 선무(仙舞)
왕골공예, 200x200x650mm, 1996년도

남상교(192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서 응용미술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서울여자대학교 공예과 교수 및 학생처장, 한양대학교 공예과 교수와 디자인대학 학장, (사)한국디자이너협의회 이사장, 국제 기능올림픽 대회 한국위원회 기술위원 및 민속공예 분과장, 한국 디자인학회 이사 및 섬유디자인연구회 회장, 경기도 공예품개발업체 전문지도위원과 경진대회 심사위원 및 위원장, 전국 공예품 경진 대회(현 공예대전) 추진 및 심사 위원, 한국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전 협회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장 역임 등 다수의 교직 및 사회 활동을 하였다. 정년퇴임 후에는 서울 평창동에 상원미술관(2003년)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작가 남상교는 3회의 개인전과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한국 공예 대전, 한국 현대공예 우수작가 초대 전, 현대 미술 초대작가 전, 예술의 전당 미술관 개관 전, 서울 공예 대전, 한국 섬유 공예 100인 전 등 100회 이상의 정평 있는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그는 ‘한국 민속공예의 조형사적 연구’(박사학위 논문) 등 25편의 논문 및 저서를 집필하였으며, 오랫동안 다양한 연구 실험을 통해 이룩한 염색공예(주전공)의 성과들을 민속공예에 적용․접목하여 공예의 확장성을 도모하여 왔다. 90세에 이르는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박공예, 왕골공예 등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의 민속 공예의 발전적 계승 모델의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강수화 - 진사백자
도자공예, 260x260x280mm, 1981년도

강수화(1935)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였고, 경희대학교 요업공예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미국 롱아일랜드대학 초청 교수와 아프리카 가봉 정부파견 교수, 캐나다 MANITOBA주립대학교 초청 교수, 국전 심사위원, 한국 기능올림픽 위원회 심사위원장, 남산산요 소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국전 9회 입선과 동아 민속공예 대전 동상을 수상하였고, 1972년, 1973년, 1980년 등 개인전 및 진사자기 전, 진사백자 전, 일본 나고야 국제도예 전, 한일 화기 전, 세종대왕 기념관 전, 국전 초대작가 전, 범 세계 창작도예 전, 한국 현대 미술관, ’91 서울 현대도예 비엔날레 등 다수의 단체전에 출품하였다.

작가 강수화는 진사백자의 대가 중 한 명이다. 진사 백자는 도자기 바탕에 산화동채료(진사)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거나 칠한 뒤 백자 유약을 입혀 구워내면 산화동채료(진사)가 붉은색으로 발색되는 자기이다. 조선시대에는 이것을 주점사기, 진홍사기라고도 불렀으며 진사백자라는 명칭은 20세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진사백자의 대표적 작가인 고 강수화(1991년 작고)의 작품 세계는 그의 인간성을 대변하듯 그 선이 부드러우면서도 중후한 멋이 있다. 그의 청년 시절 백자로 영작된 그의 작품은 이조 백자의 맥을 이어 오면서도 그의 특유한 예술적 감각으로 자기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다
권순형 - 녹청유호(綠靑釉壺)
도자공예, 175x175x200mm, 1981년도

권순형(1929)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였고, 동 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대한민국 예술원 원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서울특별시 문화위원회 위원, 대한무역진흥공사 디자인위원, 제1회 대한민국 상공미술전 공예부 심사위원,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운영위원, ‘89 서울 현대도예 비엔날레 대회장, ‘91 서울 현대 도예 비엔날레 대회장을 역임하면서, 한국 현대 도예작가 전, 한국 현대 도예가 협회 전, ’82, ’84, ’85, ’87 현대미술 초대전, 제12회 중(中).일(日) 국제 도예전 초대 출품, 한국 현대미술 어제와 오늘 전, ’86 현대 한국미술 상황 전 등 활발히 작가 활동을 하였다.

작가 권순형은 전통 도자기에서 볼 수 있는 단순한 녹색의 이미지가 아니라 다양한 색조, 인근색기, 대비색기, 명도와 채도 등 톤을 함께 하는 화려한 독보적인 색상을 구사하면서도 화학 물감이 아닌 전통의 바탕 속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백자 바탕을 기반으로 진사에서 녹청유를 개발, 회화적인 색상으로 승화시켜 건축물의 공간과 벽면 등 평면장식을 시도한 도벽, 부조에까지 발전시켰다.

그의 작품은 전통 도자에서 볼 수 있는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의 이미지를 재현하거나 그 표면의 무늬를 변용하는 류의 전통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의 작품은 어디에 내놓아도 한국인의 도자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만큼 한국인의 채취가 서려 있음을 알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