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정선미술관
Gyeomjae Jeongseon Art Museum
겸재정선미술관은 진경산수화풍의 완성자이자 대성자인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예술적 업적을 기리고 진경문화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강서구 가양동 양천현아지 인근에 건립되어 2009년 4월 개관하였다. 겸재 정선은 우리 산천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진경산수화풍을 완성한 조선후기 대표화가로, 이러한 그의 화업을 기려 전시실은 정선의 생애와 작품세계 등을 재조명해 볼 수 있는 공간 [겸재정선기념실]과 강서구의 고유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 [양천현아실], 그리고 [기획전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으로 겸재정선미술관은 겸재 정선 연구의 메카이자, 인근의 허준박물관, 양천향교, 양천고성지 등 인접해있는 역사문화자원과 연계하여 복합예술문화기관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겸재정선미술관
Gyeomjae Jeongseon Art Museum
겸재정선미술관은 진경산수화풍의 완성자이자 대성자인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예술적 업적을 기리고 진경문화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강서구 가양동 양천현아지 인근에 건립되어 2009년 4월 개관하였다. 겸재 정선은 우리 산천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진경산수화풍을 완성한 조선후기 대표화가로, 이러한 그의 화업을 기려 전시실은 정선의 생애와 작품세계 등을 재조명해 볼 수 있는 공간 [겸재정선기념실]과 강서구의 고유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 [양천현아실], 그리고 [기획전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으로 겸재정선미술관은 겸재 정선 연구의 메카이자, 인근의 허준박물관, 양천향교, 양천고성지 등 인접해있는 역사문화자원과 연계하여 복합예술문화기관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겸재정선미술관
Gyeomjae Jeongseon Art Museum
겸재정선미술관은 진경산수화풍의 완성자이자 대성자인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예술적 업적을 기리고 진경문화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강서구 가양동 양천현아지 인근에 건립되어 2009년 4월 개관하였다. 겸재 정선은 우리 산천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진경산수화풍을 완성한 조선후기 대표화가로, 이러한 그의 화업을 기려 전시실은 정선의 생애와 작품세계 등을 재조명해 볼 수 있는 공간 [겸재정선기념실]과 강서구의 고유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 [양천현아실], 그리고 [기획전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으로 겸재정선미술관은 겸재 정선 연구의 메카이자, 인근의 허준박물관, 양천향교, 양천고성지 등 인접해있는 역사문화자원과 연계하여 복합예술문화기관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겸재정선미술관
Gyeomjae Jeongseon Art Museum
관람시간
하절기(3-10월): 10:00-18:00 (입장마감 17:00)
동절기(11-2월), 토·일·공휴일: 10:00-17:00 (입장마감 16:00)

* 매주 월요일, 신정, 설·추석 당일 휴관

관람요금
1) 일반 관람
어른: 개인 1,000원 / 단체(20인 이상) 700원
청소년 및 군경: 개인 500원 / 단체(20인 이상) 300원

2) 통합관람
어른: 개인 1,300원 / 단체(20인 이상) 1,000원
청소년 및 군경: 개인 700원 / 단체(20인 이상) 500원

3) 무료관람
- 7세 이하 및 65세 이상
- 국가유공자, 독립유공자 및 그 유족 또는 가족
- 장애인 및 그와 동행하는 보호자 1인
- 다둥이 행복카드 소지자(등재된 가족 포함)

* 무료관람일: 매월 둘째·넷째 토요일, 설·추석의 전·후일, 어린이날,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부대시설
뮤지엄샵, 카페테리아, 체험학습실, 다목적실

안내
T: 02-2659-2206~7
W: https://culture.gangseo.seoul.kr/gsfc/main/contents.do?menuNo=800005

미술관 소개
겸재정선미술관은 진경산수화풍의 완성자이자 대성자인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예술적 업적을 기리고 진경문화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강서구 가양동 양천현아지 인근에 건립되어 2009년 4월 개관하였다.

겸재 정선은 우리 산천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진경산수화풍을 완성한 조선후기 대표화가로, 이러한 그의 화업을 기려 전시실은 정선의 생애와 작품세계 등을 재조명해 볼 수 있는 공간 [겸재정선기념실]과 강서구의 고유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 [양천현아실], 그리고 [기획전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으로 겸재정선미술관은 겸재 정선 연구의 메카이자, 인근의 허준박물관, 양천향교, 양천고성지 등 인접해있는 역사문화자원과 연계하여 복합예술문화기관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소장품 소개
정선 - 매미도
지본담채, 21.0☓21.0cm, 18세기

겸재 정선(1676-1759)의 손자인 정황(1737-?)의 작품으로, 정선 이후의 화가들에게 정선이 끼친 회화적 영향과 시대상황까지 아우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임

 

매미는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信 등 오덕五德을 갖춘 군자로서 관심을 받아왔다. 조선시대 선비들 역시 군자를 상징하는 매미에 자신의 포부를 담아 시문이나 그림으로 표현하길 좋아했다.

정황의 매미그림 역시 새로운 각오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때를 기다리고 있는 선비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화면은 새로 속은 버들가지와 가지에 앉은 매미를 크게 강조하였는데, 정황의 매미그림은 할아버지 정선의 영향을 받았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정선의 <송림한선도松林寒蟬圖>는 조선시대 매미그림을 대표할 정도로 뛰어난 작품으로, 활달한 구도나 관찰력이 돋보이는 매미 묘사 등이 특징을 이룬다.

정황 역시 정선처럼 대각선으로 버들가지를 배치하고 그 위에 앉은 매미를 묘사하였다. 버들가지와 잎에 청록의 담채를 하여 화면 전체에 시원한 느낌을 주고 있다. 나무는 비교적 간략히 묘사하고 매미는 보다 세밀히 표현하는 시각적인 대비를 통해 주제가 더욱 강조되었다. 오른쪽 여백에 ‘손암巽庵’이라는 글씨와 백문방인이 찍혀있다.
정선 - 양주송추도
견본담채, 23.6☓36.1cm, 18세기

겸재 정선(1676-1759)의 손자인 정황(1737-?)의 작품으로, 정선 이후의 화가들에게 정선이 끼친 회화적 영향과 시대상황까지 아우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임

 

정선은 손자인 손암巽庵 정황鄭榥(1737-?)이 그린 것으로, 정황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의 그림은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 그림은 양주에 있던 정선의 묘소 부근의 전경을 그린 것으로, 『광주정씨세보光州鄭氏世譜』에 의하면 양주 해등촌면 계성리(현 도봉구 쌍문동)에 안장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울의 북교北郊인 도봉산과 인수봉의 일부를 사경한 것으로, 산등성이에는 많은 비석이 그려져 있고, 좌측 하단에는 성묘를 마치고 돌아가는 일행의 모습도 보인다. 좌측 상단에는 화제와 함께 ‘황경사榥敬寫’라고 적혀 있어 선조의 묘역을 담기 위해 그렸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정선-청풍계도
견본담채, 28.4☓17.6cm, 18세기

겸재 정선(1676-1759)의 원화 작품으로, 겸재 작품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작품으로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고 사료됨

 

청풍계는 인왕산 동쪽 기슭 현재의 청운동에 해당하는 곳으로, 조선후기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안동 김씨의 세거지였다. 정선은 안동 김씨의 후원을 받았으며, 정선의 외가도 부근에 있어 근처의 풍광을 자주 그려서 <풍계유택>이라는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청풍계는 정선이 즐겨 그린 곳 중의 하나이다. 이작품은 정선이 그린 많은 <청풍계> 중 70대 이후 원숙한 노년기에 그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장동팔경첩⟫중 <청풍계>와 구도와 완성도 면에서 비교될 만하다.

구도 및 시야는 거의 동일하나 이 작품은 화면 맨 아래쪽에 아마도 나라에서 세워준 정문旌門으로 보이는 건물 전체를 포함한 반면, 국립중앙박물관본은 화면 상단 인왕산 능선까지 포함한 점이 다를 뿐 거의 동일하게 그려져 있다.
정선 - 조어도
지본담채, 21.1☓27.7cm, 18세기

겸재 정선(1676-1759)의 원화 작품으로, 겸재 작품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작품으로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고 사료됨

 

은일을 상징하는 ‘어부’의 소재는 문학은 물론 그림에서 자주 그려졌는데, 그 중 낚시하는 어부 즉 조어釣魚형식의 어부도는 자연에서 수양하다가 때를 만나면 정치에 입문하여 뜻을 펼친다는 사대부의 정치관을 상징하여 조선시대 내내 즐겨 그려졌던 소재였다.

화면 왼쪽 경사가 심한 절벽에는 위태롭게 뻗어 있는 오래된 나무가 있고, 그 아래 작은 쪽배에는 삿갓 쓴 노인이 한가로이 낚시를 하고 있다. 낚싯대를 드리운 노인은 낚시에의 관심보다는 깊은 상념에 잠겨 있는 듯한데, 짙은 먹선으로 각지게 처리한 절벽과 물이 풍족하지 않은 여건에서도 깊은 뿌리를 박고 자신의 강인함을 드러낸 나무는 오랜 세월 지조를 지켜온 노인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화면 오른쪽에는 “자줏빛 옷을 입고 낚시를 드리우니 강의 기러기가 등 뒤에서 나르네. 연객이 평하다(紫衣垂釣 江雁背飛 烟客評).”라고 강세황과 절친했던 연객烟客 허필許佖(1709-1768)의 평이 적혀있다.
정선 - 피금정도
지본담채, 21.1☓27.7cm, 18세기

겸재 정선(1676-1759)의 원화 작품으로, 겸재 작품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작품으로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고 사료됨

 

피금정은 내금강산으로 들어가기 전 거치는 금성(金城 : 현재 강원도 금화군)에 위치했는데, 이곳은 아름다운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금강산을 방문하다 들른 방문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정선이 그린 <피금정도> 작품을 통해 울창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피금정과 미법으로 표현된 부드러운 배경의 산에서 이러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피금정 주변이 보다 간략히 처리 되었고 배경을 이룬 산이 높게 표현되어 주제인 피금정이 보다 강조되었다. 이것은 화면 아래 남대천을 건너려는 여행객이 바라본 시선이 가미되어 피금정과 경파산이 크게 부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세황과 절친했던 연객烟客 허필許佖(1709-1768)이 백하白下 윤순尹淳(1680-1741)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해 썼는데, 윤순의 시는 다음과 같다.

 

“골짜기의 빛은 깊어 저문듯하고 마을 모습은 고요하여 잠자는 것 같네(白下尹尙書詩曰 峽色深如莫 邨容静若眼).”

정선 - 산수도
지본수묵, 22.0☓16.0cm, 18세기

겸재 정선(1676-1759)의 원화 작품으로, 겸재 작품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작품으로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고 사료됨

 

전경에 세 그루의 나무가 있는 둔덕과 시원하게 펼쳐진 수면, 실루엣처럼 처리된 원산으로 이루어진 간일한 화면구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는 나무들 아래 잠시 비바람을 피해있는 쪽배의 전경장면이 크게 부각되어 있다. 비바람이 멈추기를 기다리는 듯 먼 곳을 응시하는 어부의 시선을 통해 화면은 더욱 확장된다. 일필로 처리된 나무둥치와 원산표현, 나뭇잎의 미점, 바람에 몸을 맡긴 버들가지와 출렁이는 물결 등에서 정선의 활달한 필치를 느낄 수 있다. 바람이 부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시원하면서도 여유 있는 느낌이 잘 전해지는 격조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은 화첩의 일부였을 것으로 보이며, 화면 상단 오른쪽에 나중에 쓴 것으로 보이는 ‘謙齋겸재‘의 글씨와 백문방인이 있다.
정선 - 귀거래도(운무심이출수)
견본담채, 24.5☓22.5cm, 18세기

겸재 정선(1676-1759)의 원화 작품으로, 겸재 작품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작품으로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고 사료됨

 

귀거래도는 중국 육조六朝시대 시인 도연명陶淵明(365-427)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그림으로 그린 것으로, 화면 상단에 화제와 더불어 ‘謙齋겸재‘라 쓰여 있고, 두 개의 백문방인이 찍혀있다.

이 그림은 도연명이 소나무 아래 앉아서 멀리 산골짜기에서 솟아오르는 구름을 바라보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경쾌한 필선으로 간단하게 그려진 주산과 송림 등이 화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화면 상단에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서 피어오른다(雲無心以出岫).”란 화제가 적혀 있다.
정선 - 귀거래도(문정부이전로)
견본담채, 24.5☓22.5cm, 18세기

겸재 정선(1676-1759)의 원화 작품으로, 겸재 작품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작품으로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고 사료됨

 

귀거래도는 중국 육조六朝시대 시인 도연명陶淵明(365-427)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그림으로 그린 것으로, 화면 상단에 화제와 더불어 ‘謙齋겸재‘라 쓰여 있고, 두 개의 백문방인이 찍혀있다.

“나그네에게 앞길을 묻는다(問征夫以前路).”란 화제와 함께 나귀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연명을 그렸다. 그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고향이 얼마나 먼가를 물어보고 있으며, 행인은 그가 가야할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행인이 가리킨 곳은 산들이 중첩되어 있어 매우 먼 곳임을 암시한다. 중국의 귀거래도나 귀거래사의 ‘문정부이전로’에서는 말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없으나 정선은 이 작품처럼 말을 탄 도연명을 종종 표현하였다. 이것은 정선이 주제를 스스로 해석하여 표현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정선 - 귀거래도(무고송이반환)
견본담채, 24.5☓22.5cm, 18세기

겸재 정선(1676-1759)의 원화 작품으로, 겸재 작품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작품으로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고 사료됨

 

귀거래도는 중국 육조六朝시대 시인 도연명陶淵明(365-427)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그림으로 그린 것으로, 화면 상단에 화제와 더불어 ‘謙齋겸재‘라 쓰여 있고, 두 개의 백문방인이 찍혀있다.

“홀로 서 있는 소나무 어루만지며 서성이다(撫孤松而盤桓).”란 화제와 함께 동산 위에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소나무를 어루만지고 서 있는 도연명이 묘사되어 있다. 소나무는 화면을 대각선으로 가르며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무고송이반환도>는 <치자후문도稚子候門圖>와 더불어 귀거래도의 단독 주제로 가장 널리 유행했던 그림으로 정선 역시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정선은 이 작품의 소나무와 서 있는 인물 모티브를 『개자원화전 芥子園畵傳』의 「인물옥우보人物屋宇譜」에 수록된 ‘무고송이반환식撫孤松而盤桓式 ’에서 차용해 변용하여 제작하였다.
정선 - 청하성읍도
지본수묵, 32.7☓25.8cm, 1733~1735년

겸재 정선(1676-1759)의 원화 작품으로, 겸재 작품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작품으로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고 사료됨

 

정선이 지금의 포항시에 속하는 청하淸河의 현감縣監을 지내면서 그 곳 성읍의 경관을 그린 것으로, 당시 청하성읍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정선은 58세(1733년) 때 청하현감으로 부임하여 60세인 1735년 5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상경하게 되기까지 약 2년 남짓 재임하였는데, 이 시기 <청하성읍도> 외에도 <내연삼용추도內延三龍湫圖>, 성류굴도聖留窟圖> 등을 제작하였다.

자신이 근무하는 관아를 화면의 중심에 두고 원경에는 호학산呼鶴山을, 근경에는 갯벌과 솔밭을 그려 넣어 성읍의 경관이 한 눈에 보이도록 했다. 노년기의 속필速筆이나 과감한 필법과 달리 단정하고 차분한 필치로 경물 묘사에 공을 들여 그렸다. 화면상단 화제 옆에는 자손대대로 소중하게 전해지기를 바랬던 듯 ‘千金勿傳천금물전’이란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찍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