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곡미술관 《민재영: 생활의 발견》

2021 서울시 미술관 사진·영상 컨텐츠 지원

생활의 발견
Hidden Meanings in Everyday Life
민재영 Jaeyoung Min

2021년 10월 7일 – 11월 28일
성곡미술관 1관 (제 1, 2, 3 전시실)
평일 및 주말 오전 10시 – 오후 6시
* 매주 월요일 휴관,
** 입장 마감 오후 5시 30분

대도시의 일상적 삶의 단편들을 한지 위에 수묵으로 그리는 작가가 있다. 바로 민재영이다. 민재영은 붐비는 지하철 객차 내의 한 장면, 꽉 막힌 도로 위의 자동차들,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 인터뷰 중인 정치인, 클럽에 모여 춤추며 즐기는 젊은이들,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 등 현대인의 일상풍경을 지필묵으로 담아낸다.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전통 동양화 재료인 한지 위에 작가의 호흡을 느낄 수 있는 수묵의 터치로 작가가 체험한 일상의 풍경을 그린다. 그런데 그의 풍경화는 전통 동양화와는 좀 색다르다. “나의 작업은 TV, 영화, 잡지 등 각종 미디어를 통해 삶을 응시하는 현대인의 생활에 대한 자화상이자 기록으로, ‘TV 주사선’을 연상시키는 수묵채색의 가로선을 중첩하며 화면의 시각적 효과를 의도해 왔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 보편적 익명성과 미디어적 은유를 덜어내고 내 자신의 생활 반경의 반복되는 모습들을 담아내려한다.”라고 민재영은 말한다. 먼저 작업과정을 살펴보자. 작가는 한지 화면 전체에 가로망처럼 일정 간격으로 조밀하게 ‘수묵가로획선’을 그은 후 그것을 바탕 삼아 도시 군중의 이미지를 소재로 작업을 시작한다. 이때 작가는 이 이미지들을 위하여 보도사진의 이미지를 차용하거나 직접 모델들을 섭외하여 연출 촬영하기도 한다. 이어서 이미지가 배경에서 배어나오듯 분해된 원색의 짧은 가로획들을 수십 회 중첩시키며 화면을 구성해 나간다. 이때 이 특별한 ‘수묵가로획선’은 전자 기기 스크린의 ‘주사선’ 또는 ‘디지털 그물눈’과 ‘RGB 픽셀’에 비유될 수 있는데, 이러한 해석은 민재영의 회화를 이해함에 있어 설득력을 갖는다. 전통 동양화 도구와 현대적이고 전자적인 이미지 제작 방식이 서로 만나는 교차점에 민재영의 회화가 위치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가로 먹 선은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먼저 먹 선은 화면 전체를 균등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서 한 화면의 공간적 거리감이나 형상과 배경의 위계를 없애고, 필 획 하나하나를 서로 이어주고 잡아주는, 이미지 구축을 위한 화면의 기본 망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가로망과 중첩된 원색의 획 입자들의 모음으로 이뤄진 민재영의 ‘풍경화’는 오늘날 미디어가 생산해내는 사물화된 이미지인 시뮬라크르로 확대 해석이 가능하다. 각종 매스미디어의 이미지처럼 원본의 의미를 상실하고 그 자체로서 실체성을 획득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주사선이나 전자기기의 픽셀과 동격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묵가로획’의 망으로부터 스며 나온 RGB 원색 컬러와 같은 이미지들은 우리시대의 이미지로서 현실과 밀접하게 맞닿아있고, 현실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재영의 이미지는 전통 회화의 재현된 이미지가 아닌 그 자체로 실체성을 획득하는 시뮬라크르와 닮아있다. 민재영이 이러한 시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습관적이고 무의미해 보이는 삶의 동작과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 깊숙이 숨겨진 인간적 의미들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들을 숨기기에 적합한 매우 민감한 피부의 한지 위에 수많은 붓질과 수묵의 번짐이 제공하는 흐릿함과 모호함, 부드러움 그리고 의미가 도피하고 있을 법한 연출된 공간, 또는 정반대로 의미가 침투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다시 살려내고자 하는 것이리라. 바로 이것이 민재영 작업의 독창성이며 신선함이다. 디지털 이미지의 판판함, 딱딱함, 차가움, 무미건조함 대신에, 한지와 먹이 아우르는 민재영의 호흡은 살아있는 공간의 거리감과 심층의 효과를 통해 작가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잃어버린 그리운 추억이나 친밀했던 존재에 대한 기억과 그 흔적들을 회복하고자 한다. 전통회화의 관습적 그림그리기 방식을 넘어서서 실험적인 새로운 방식의 회화를 시도하고, 가장 평범한 일상 속에서 생명의 힘을 발견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염원을 민재영의 회화가 드러내 보여준다. 이 전시는 민재영 작가의 지난 20년을 함께 한다.


* 본 영상은 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제작하였습니다.